나는 눈이 나쁘다
시력이 나빠 대부분 분명히 보이지 않고 뿌옇게 보인다
사람들은 내게 왜 안경을 쓰지 않냐고, 혹은 왜 라식, 라섹을 하지 않냐고 묻는다
안경은 영화관 가거나 본가의 거실에서 벽걸이 티비 볼 때 쓰고, 라식이나 라섹같은 시술은 무서워서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대충 안보이는 지금의 현실이 편하기 때문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안경을 쓰고 밝은 곳에 가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특히 공공 화장실을 가면 좀 불편해진다
모르는게 낫다고 해야하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마냥 현실을 회피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모르는게 약이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위생적이지 않은 눈쌀 찌푸려지는 것들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 덕분에
꽤 편하게 지내는 것도 있다
또한가지는 가까이 위치한 것들은 제법 잘 보이기 때문에 대화 상대의 표정은 잘 보인다
그래서 내가 현재 집중해야하는 사람의 표정을 놓쳐 실수를 하거나 대화를 놓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멀리 있는 사람은 잘 못알아봐서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람을 상대해야하는 일을 하는데 못보고 인사를 못할 때가 있지만
내가 눈이 나쁜 것을 상대가 알 정도의 관계이면
굳이 눈이 나빠서 인사하지 못한 것을 불쾌하진 않고
혹은 상대가 손짓을 해 내게 인사를 하고 소용이 없는것을 알면서 두 눈을 찌푸리며 시력을 최대한 만렙을 만들어
상대방을 알아보려는 내 노력이 나쁘게 보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난 그럭저럭 나쁜 시력을 방패삼아
여기저기 인사해야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막고 살아왔다
눈이 나쁘면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는데
오늘 커피숍에서도 내 맞은편 테이블에 남녀가 앉았다
밝은 브라운 컬러의 염색머리와 청바지를 입고 스웻티를 입은 남자, 도톰한 패딩을 입고 배를 내민 여자
얼핏 봐서는 임신을 앞둔 젊은 아내와 그의 남편이 쉬는 날 점심을 먹고 잠깐 커피 한잔 하러 온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쁜 시력의 나라도 남자의 머리가 밝은 갈색 안쪽으로 숨겨진 두피가 훤히 보였다
탈모라는 얘긴데 이후로 다시 보니 얼굴형과 자세가 제법 나이가 드신 분이었다
50대 중후반의 아저씨로 보였다
그렇다면 아까 그 젊은 여자는 누구지?
딸인가?
임신한 딸을 데리고 온 건가?
포니테일을 하고 천천히 이동한 채 음료를 챙기러 간 딸을 기다리고 있는건가?
보통의 연인이라면 남자가 커피를 챙겨오는데
여자가 커피를 픽업하러 갔다면 부녀사이이거나 혹은 이례적으로 시부와 며느리일 확률도 있다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서 그 짧은 순간 나는 아빠와 커피숍을 둘이 간 적이 있나 생각해봤다
아빠와 커피숍에서 둘이 대화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니
아빠는 매우 T 스러우시기 때문에 커피숍에서 노닥거리는 것을 그닥 좋아하시지도 않는데다가
그 세대의 어른들이 그렇듯이 특히 60이 넘은 남성이 커피숍에서 커피를 즐기는 것으 그닥 당연한 루틴은 아니니까
절약이 체화된 우리 부모님에게 그런것은 돈낭비 같은 것일 뿐이다
내 성화에 못이겨 베이커리 까페를 가거나 우리를 픽업하러 아빠가 잠깐 들리셨던게 다다
그나마도 음료를 사람숫자대로 시키지 말자고, 엄마랑 아빠랑 나눠드시면 된다고 하고
그럼 나는 그럼 진상된다고 하나 더시켜야한다고 말리는게 내 기억이다.
그런 부모님에게 특히 아빠와 한심한 노처녀 딸과 커피숍에서의 대화는 그의 피를 불편하게 끓게 할 따름이라
나는 그런 상황은 가급적 피했다
그런데 부녀일지도 모르는 그 두사람을 본 그 짧은 딸? 일지도 모르는 임신한 그녀가 대단해 보이고
나도 시도해 봐야하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면서 설마 나이많은 남편의 젊은 아내인가? 김동건같이 노인도 아이를 갖는데 저 아저씨는 그 정도는 아닌데
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군... 이런 생각에 잡혀있을 때 여자는 테이블에 없었고, 나는 이따 그녀가 오면 여자 얼굴을 봐야지 했다 (이 때는 이 글을 쓰느라고 안경을 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 즈음 그 착한 딸?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그의 아내였다 누가봐도
나이든 중년의 여인이었다 임신이 아니고 약간 배가 도톰히 나오고 우리내 엄마들의 보통 체형을 가진 머리를 질끈 묶고 그냥 대충 아무거나 집에 있는 것을 입고 온 편한게 최고인 우리의 엄마 같은 아주머니였다
임신했을거라는 내 착각은 그녀의 패딩과 약간의 비만이 가져온 오해였다
괜히 미안해졌다 그러면서 안경을 안써서 혼자 한 착각과 그 짧은 시간 수많은 상황을 상상하고 아빠와 커피숍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 시도해봐야하나 하다가 결국안 안되겠다
그래도 엄마 데려가면 되겠지로 착하게 적당히 합의본 내 마음에 속삭였다
오늘 뭔가 하나를 결심했고, 노력했고, 시도해보자
이렇게 나는 오늘도 하나를 배워가는건가 라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두 사람을 관찰했다
나른한 오후에 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년의 부부는 (노년을 향해가고 있는 부부는) 각자 핸드폰을 보면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가끔 재밌는 것을 보면 서로에게 보여주고
아주 가끔 대화를 하지만 거의 대화는 없다
그런데 재밌게도 두 사람은 매우 편해보인다
표정도 편하고 사이 좋은 부부로 느껴진다
각자 핸드폰을 하지만 아내분이 재밌는 것을 보면 남편에게 공유하고
무심한 듯 힐끗 아내가 공유한 것을 보며 매우 짧게 응 이라고 하고 다시 자기가 보는 것에 집중하는 아저씨는
두 사람은 사이가 좋다
부부는 이런건가보다
깨 쏟아지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일을 하다가 뭔가를 가끔 공유하고 서로 공감하고 다시 자기일을 하고
뭔가 같이 하진 않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당연하고 그 순간이 숨쉬듯이 편한 관계말이다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관계는 아니겠지
부부가 의외로 아닐지도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과 너무 비슷한 느낌이라 난 이 순간이 담고 싶어졌다
나쁜 내 시력이 불러온 오해와 그로 인해 깨달은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